북미 방송가에서 '나이트 크롤러'는 강력 사건 사고 현장의 영상을 확보해 방송국 등 매체에 유료 판매하는 일종의 영상 프리랜서를 말한다. 자극적 영상 확보를 위해 실체를 왜곡하거나 조작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영화 '나이트크롤러' 국내 개봉판 포스터 캡처

[더팩트ㅣ명재곤 기자] 밤에만 기어 다니는 지렁이는 '조작 뉴스'로 먹고 산다. 사건 현장에 경찰보다 먼저 도착한 '지렁이'는 인명 구조보다는 피해자를 카메라에 담기 좋은 구도와 위치로 옮기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  

자극적인 영상을 확보하기 위해 스스럼없이 현장을 훼손한다. 심지어 연출한다. 살인 사건 용의자를 카메라에 담고서도 이를 경찰에 말하지 않는다. 더 충격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 용의자들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게끔 꾸민다. 자신의 동료마저 영상자료의 극대화를 위해 죽음으로 내몬다. 그리고 이 영상을 시청률에 목메는 방송국에 거액을 받고 넘긴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Night crawler)'의 콘셉트이다. 영화는 2014년 개봉돼 그해 미국 샌디에이고 비평가협회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등을 받았다. '밤 지렁이'란 뜻의 나이트 크롤러는 강력 사건·사고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언론에 팔아넘기는 영상 프리랜서를 지칭하는 방송가 은어이다. 

두 시간 여 러닝 타임의 이 영화는 '모든 뉴스는 다 진실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언론의 창을 통해 당신이 보는 영상(뉴스)이 인위적으로 꿰맞춘 '변형된 것' 일 수 있다는 개연성을 진하게 남겨준다. 조작 뉴스는 전형적인 '가짜 뉴스(Fake News)'이다.

'장미 대선’이 본격화되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가짜 뉴스에 대한 경계심과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거짓과 부정이 활개를 치는 ‘탈 진실(post truth)’풍조 속에서 가짜 뉴스가 유권자를 현혹시키고 표심을 결정짓는 상황을 지난 미국 대선에서 목도했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19대 대선에 출마할 각 당 후보들이 확정됐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더팩트DB
19대 대선에 출마할 각 당 후보들이 확정됐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더팩트DB

기성 언론계도 비상이다. 자칫하면 가짜 뉴스 생산자의 불명예를 뒤집어 쓸 수 있기에 대선 정국에서 팩트 체크 및 게이트 키핑에 온 신경을 쏟고 있다. 오보도 결국은 최종 소비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가짜 뉴스로 귀결되는 경우를 맞이할 수 있고 자칫 법적 다툼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가짜 뉴스나, 비의도적인 오보나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별반 다름이 없는 무책임의 창칼이라는 판단에서다.  

피를 말리는 접전의 대선 가도에서는 경쟁 상대방이 제기한 사실 확인이 곤란한 의혹을 뉴스의 틀에 무작정 혹은 무심코 넣는 행위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지난 2월 한국언론학회 등이 주최한 '가짜 뉴스 개념과 대응방안'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보도의 형식을 띠고 유포된 거짓 정보'를 가짜 뉴스로 봤다. 이 경우, 언론사 A가 자신들이 지향하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지속적으로 편파적 해석을 내린 기사를 쏟을 경우, 극단적으로 이를 가짜 뉴스로 낙인찍어도 무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촛불·탄핵'정국에서 '세월호 사건은 북한 지령이었다' '헌재 재판관이 200억 원을 받고 탄핵을 인용했다' 등의 특정 극보수 매체 흑색선전만이 가짜 뉴스 유형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근래 여론조사의 감초격 문항으로 등장하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양자대결건도 사실 따지고 들면 문제가 전혀 없는 게 아니다. 어찌보면 버젓이 드러낸 가짜뉴스의 하나라는 지적을 받아도 100%항변하기가 힘들 수 있는게 양자대결 뉴스다.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심상정 등 대선 본선 주자들이 각 정당별로 확정된 후 오늘까지 어느 누구도 후보사퇴를 일언반구 언급한 이가 없다. 투표일이 막바지에 다가오면 그 때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대진구도가 짜여질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금은 그렇다.

그런데 일부 언론들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자대결을 흥미로운 소재로 삼고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해석하면서 지지고 볶고 난리를 친다. 정치 뉴스에 밝지 않은 유권자가 오늘 신문이나 방송을 본다면 제19대 대선이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만 출마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을 만큼 상당수 매체가 양자 구도를 뉴스 한 복판에 둔다.  

19대 대선에서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왼쪽)과 안철수 후보. /더팩트DB
19대 대선에서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왼쪽)과 안철수 후보. /더팩트DB

왜 그러는 것일까.  

누구는 이렇게 해석했다. "그런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특정 후보에게 거부감을 가진 유권자들에게 전략적 투표를 하라는 최면성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고 한다. 누구는 "여론 호도에 조작의 의도까지 있는 것 아니냐"며 혀를 차기도 했다.  

각 당의 후보들이 눈 시퍼렇게 대선 이후의 정국지형을 생각하면서 목청을 돋구고 있는 상황에서 문재인과 안철수, 안철수와 문재인의 양자 대결을 풀무질하는 뉴스를 어떻게 봐야할 지 답답하기는 필자도 마찬가지다.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가짜 뉴스 유혹에 발을 담그고 공범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내로남불'일까.

언론과 여론은 후보들에 대한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공약은 물론 후보 주변 의혹에 대한 진위 가르기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질수 밖에 없다.

아직까지는 대선 판도를 좌우할 메가톤급 검증 공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상대방 맷집을 가늠하는 잽만 날리는 탐색전 수준이다.  

하지만 다자 구도에서 1,2위 지지율 격차가 의미를 부여할 만큼 오차범위내로 좁혀지는 국면이 펼쳐진다면 '아니면 말고 식' 무차별 난타전이 전개될 게 경험칙으로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문재인 후보의 아들 취업 논쟁을 난타전 시발로 보는 이들이 많다. 안철수 후보 부인의 대학교수 임용과정에 대한 의혹 제기도 같은 선상의 그 것이다.

불과 한 달 여 남은 짧은 선거운동 기간을 감안할 때 이번 대선은 후보의 정책 공약보다는 신변 의혹이 검증의 주 대상이 되고 승패의 분기점이 될 공산이 크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많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측간의 근래 공방 소재를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은 나이트 크롤이 꿈틀거릴 공간이 어느 대선보다 넓을 수 있다. 정책경쟁, 프레임 대결은 벌써 뒤로 빠지고 자극적이고 마타도어 성격을 지울수 없는 의혹 공방으로 선거기간이 날을 샐 수가 있다. 과문한 탓인지, 한반도 통일정책을 얘기하는 후보가 없다는 게 그 방증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검찰은 가짜뉴스 생산·유포자를 엄정 단속해 처벌한다고 밝혔지만 여론조작과 흑색선전이 그 엄포때문에 꼬리를 사릴 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4월 대선을 앞둔 프랑스 이상으로 우리도 '전쟁을 선포하다시피' 가짜뉴스를 단속·처벌해야 하지만 현실이.

영화 '나이트 크롤러'의 댄 길로이 감독은 "관객이 진정한 공포를 느껴야 할 대상은 사실을 왜곡하는 루이스(영화 주인공)가 아니라 그를 창조해 낸 사회"라고 말했다. 가짜 뉴스는 특정 개인(집단)의 산물이 아니라 그 개인을 잉태한 전체 사회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가짜뉴스는 그래서 더 싹을 확 잘라내야 한다.  

sunmoon41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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